빛으로 기록하다/프레임 속 인연

서울숲에서 보낸 하루 - 꽃과 빛과 마법의 정원

photo-j 2026. 5. 29. 12:06

오랜만에 서울숲에 갔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어딘가로 가야 할 것 같은 날이었고,

발이 저절로 그쪽을 향했다.

그런데 막상 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멎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현수막 하나 보지 못했는데,

그 안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장미의 계절 파란 새장 속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파란색 철제 가보였다.

하늘색 철장 위로 분홍,주황,빨강 장미들이

폭발하듯 피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꽃을 끝없이 매달아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옆에는 흰 철사로 만든 말 조형물이 서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도 장미가 넝쿨처럼 감겨 있었다.

 

이 조합이라니, 정원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 나도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고

그냥 바라만 봤다. 눈에 담고 싶어서.

 

 

 

 

공원 한쪽에는 얕은 수경 공간이 있었는데,

물이 거울처럼 고여 있었다.

 

그 위에 서울의 고층 빌딩들이 거꾸로 비쳤다.

위에는 초록 잔디와 조각상들,

아래에는 뒤집힌 마천루들 현실과 반영이 전확히 반반씩 나뉘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서울숲 2026 조형물도 물 속에 반대로 새겨져있다.

 

이 도시는, 어느 쪽이 진짜일까.

 

 

한참 걷다 보니 생태연못이 나왔다.

 

수련 잎사귀들이 수면을 가득 덮고, 물가엔 갈대와 창포가

무성하게 자리 있었다.

연못 너머로는 짙은 초록 숲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하늘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조용했다.정원박람회의 소음이 여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잠깐 멍을 때렸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고요가 있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다.

 

창포꽃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분수가 멀리 물안개를 뿜고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 예뻐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정원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마녀의정원"이라는 곳이 나왔다.

 

작은 통나무 집 하니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삐걱거리는 지붕 사이로 따뜻한 주황빛 조명이 새어 나왔다.

낡고 오래된 나무 판자들이 겹겹히 쌓여 만들어진 그 집은,

동화 속 마녀가 살 법한 곳이었다.

 

벽에는 "마녀의정원 숨은 마법 찾기"라는 지도가 붙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메모들도 여러장 붙어 있었다.

 

"이 정원의 모든 물건은 모두 마녀가 직접 만든 것이랍니다."

 

어른인 나도 한동안 그 글을 읽으면 설렜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공원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낮의 초록빛 정원이 저녁이 되자 조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풀밭 한가운데엔 '서울국제정원박람회'라는 대형 글자 조형물이 빛나고 있었고,

그 옆으로 거대한 캐릭터 풍선들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분홍 몬스터, 하늘색 공룡, 흰 고양이.

 

'SEOUL MY SOUL'이라고 적힌 조형물 앞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남았다.

박람회는 밤에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오늘의 풍경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 공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파란 가제보의 장미들, 마녀의 작은 집,

연못 위의 수련, 거꾸로 선 도시, 밤의 조명들.

 

그리고 그 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던 나.

 

수국이 만발한 꽃밭 앞 보라색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 색깔들 속에 있었다.

가끔은 그냥 예쁜 것들 사이에 앉아만 있어도 충분한 하루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서울숲 국제정원박람회

위치: 서울 성동구 뚝섬로 273,

서울숲공원 입장: 무료 (일부 프로그램 유료)

지하철: 수인분당선 서울숲역 3번 출구